사도행전요약 #121. 다시 루스드라로(2)

다시 루스드라로(2)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시체를 성 밖으로 끌어내 버렸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제 도망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피가 채 마르지도 않은 상태로 다시 루스드라로 들어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울에게는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리빙스턴은 말했습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그 사명을 다할 때까지 죽지 않는다.”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 수 있었지만 다시 숨을 쉬게 되었다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루스드라 안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영생을 얻기로 작정된 영혼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명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바울에게는 고난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이해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 겪을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겪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바울에게 고난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인과응보적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면 축복이 임하고, 거역하면 고난이 온다고 말입니다. 욥의 친구들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가난하셨습니다. 부요하신 이로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고후 8:9).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 예수님은 십자가 없는 하나님 나라를 한 번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은 고난을 하나님 나라의 비자로 여겼습니다. 욥도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욥 2:10). 하나님은 복도 주시고 화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도 다시 루스드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골고다라는 루스드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분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기에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습니다(히 2:18).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입은 상처가 갈라디아 지역에 많은 교회를 세웠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입으신 상처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지난날 루스드라에서 입은 상처들이 훗날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는 통로로 주님께서 사용하실 것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주시면 우리도 이번 한 주간 다시 루스드라로 향할 수 있습니다.

이번 주 실천해볼 것들

1. 오늘 하루 내가 살아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주께서 내게 하게 하실 일이 있구나”라고 고백해보세요. 출근길에, 식사 전에, 잠자리에 들기 전 한 번씩 이 고백을 반복하다 보면 일상의 작은 만남들이 다르게 보일 거예요. 오늘 만나는 사람, 오늘 하는 일 속에서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2. 이번 주에 겪는 작은 어려움들을 “하나님 나라의 비자”로 여겨보면 좋겠어요. 직장에서의 오해, 가정에서의 갈등, 건강의 문제, 경제적 어려움이 생길 때 “이것도 주님 나라로 가는 과정이구나”라고 받아들여 보세요. 고난을 피하려 애쓰기보다, 그 안에서 주님이 가르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여 보세요. 저녁 기도 시간에 오늘의 어려움을 이렇게 재해석해보는 건 어떨까요?

3. 내가 다시 들어가기 꺼려지는 “나의 루스드라”가 어디인지 생각해보세요. 나를 오해하는 사람, 나에게 상처 준 관계, 실패했던 사역의 자리일 수 있어요. 이번 주에 그곳을 향해 작은 한 걸음을 내딛어 보면 어떨까요? 당장 화해하거나 다시 시작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거나 그 일을 주님께 다시 맡겨드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주님이 십자가로 들어가셨기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작은 용기를 내보세요.

사도행전 강해요약(121)

사도행전 14:19-28

2025년 11월 30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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